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쥘 반도렌 (문단 편집) === 감독 === 1952년부터 반도렌은 [[KAA 헨트|라강투아]](La Gantoise)의 감독을 맡았다. 라강투아는 [[벨기에 퍼스트 디비전 A|벨기에 퍼스트 디비전]] 우승도 노려볼만한 전력으로 평가 받았지만 9위, 3위, 2위에 머물렀고 1956년에는 아예 12위로 성적이 떨어졌다. 그래도 이 시기에 라강투아는 벨기에의 대표적인 강팀으로 평가 받았기에 수많은 유명 클럽으로부터 친선 경기 제안을 받기도 했다. 이 팀들의 목록이 무시무시했는데 [[스탠리 매튜스]][* 매튜스는 이 해의 [[발롱도르]] 수상자이기도 하다.]가 이끄는 [[블랙풀 FC]], [[알프레도 디스테파노]]로 대표되는 [[레알 마드리드 CF]], [[페렌츠 푸스카스]]가 속한 [[부다페스트 혼베드 FC]], [[레몽 코파]]와 [[쥐스트 퐁텐]]을 보유한 팀이자 반도렌의 전 소속팀 [[스타드 드 랭스]], 저 멀리에선 [[펠레]]가 나중에 세계를 놀라게 할[* 반도렌이 1956년 라강투아의 감독직에서 물러났으므로 이 때는 펠레가 산투스 1군에 데뷔하기 전이었다.] [[산투스 FC]]도 그 제안을 보낸 팀 중 하나였다. 1956년부터 1959년까지 반도렌은 프랑스로 돌아가 [[US 오를레앙|아라고 스포르트 오를레앙]](Arago Sport d'Orléan)의 감독직을 맡았고 1957년 오를레앙을 우승으로 이끌기도 했다. 1959년, 반도렌의 친정팀 [[LOSC 릴|릴 OSC]]가 그에게 SOS를 요청했다. 릴은 앙드레 추바(André Cheuva) 감독의 지휘 아래 1954년 [[리그 1|디비지옹 1]] 우승을 차지했지만 다음 해엔 18개 팀 중 16위로 미끄러지는 믿기 힘든 부진을 보였고 1956년에도 16위는 유지했지만 강등팀이 3팀으로 불어나는 바람에 아예 [[리그 2|디비지옹 2]]로 강등당하고 말았다. 다음 해에 릴은 비록 다시 승격했지만 2년 만에 다시 디비지옹 2로 강등을 당하면서 추바 감독도 1958년에 사임하는 등 말 그대로 표류하는 난파선 신세였다. 하지만 반도렌의 능력으로도 릴을 극적으로 반등시킬 순 없었다. 디비지옹 2에서 11위, 9위에 머물렀고 반도렌은 1960년에 새로 독립한 [[세네갈 축구 국가대표팀|세네갈]]의 대표팀 감독으로 자리를 옮겼다. [[라울 디아뉴]]의 뒤를 이어[* 이 시기 반도렌은 감독이 아닌 코치로 디아뉴를 보좌했다는 기록도 있다.] 세네갈 대표팀 감독이 된 반도렌은 1963년 세네갈 대표팀을 이끌고 친선 대회에 참가했다. 예선에서 세네갈은 [[카메룬 축구 국가대표팀|카메룬]], [[나이지리아 축구 국가대표팀|나이지리아]], [[니제르 축구 국가대표팀|니제르]]를 모두 누르고 손쉽게 2라운드에 진출했다. 그리고 테랑가의 사자들은 프랑스 아마추어 팀도 이기고 결승에 올라 [[튀니지 축구 국가대표팀|튀니지]]와 1대1로 비겼지만 개최국 어드벤티지로 우승을 차지했다. 1963년 다시 프랑스로 돌아간 반도렌은 1년간 [[CS 스당 아르덴|UA 스당토르시]]를 지휘했지만 12위로 시즌을 마쳤고 1964년 자신이 [[선수 겸 감독]]으로 있던 아르고 스포르트 오를레앙으로 복귀했다. 하지만 9위, 다음 시즌에는 11위로 팀의 강등을 막지 못했다. 반도렌의 다음 팀은 벨기에의 [[세르클러 브뤼허 KSV|RCS 부르주아]]로 [[에드몽 델푸르]], 쥘 비고, 조르제 무리스 등 많은 프랑스 출신 감독들이 거쳐간 팀이었다. 반도렌이 부임할 당시 팀의 분위기는 말 그대로 시궁창이었다. 3부 리그로 추락한 팀의 경영진은 불만에 가득 차 있었고 선수들의 충성의 방향도 잘못되어 있었다. 하지만 반도렌은 1년 사이에 클럽을 잘 추슬렀고 이런 반도렌을 라강투아가 다시 불러 반도렌은 라강투아의 감독으로 자리를 옮겼다. 1967년 반도렌이 재차 라강투아의 감독으로 부임했을 때 라강투아는 2부 리그로 떨어져 있었다. 그리고 반도렌은 1968년 팀을 벨기에 퍼스트 디비전으로 승격시켰고 1969년에는 퍼스트 디비전 11위, 1970년에는 3위로까지 순위를 끌어올리며 라강투아 팬들의 기대감을 높였으나 1970-71 시즌에 라강투아는 충격의 강등을 당했고 이렇게 반도렌과 라강투아의 동행도 끝났다. 그리고 이를 끝으로 반도렌은 벨기에 팀들의 관심에서 멀어졌다. 1971년, 반도렌은 1년간 RE 무스크롱(RE Mouscron)이라는 3부 리그 팀을 맡았지만 시즌을 끝내지도 못하고 감독직에서 경질당하고 말았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